며느라기, 노땡큐-며느라기 코멘터리를 읽다가 '자발적 노예'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어머님과 나의 갈등이 개인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마리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결혼 후 난 왜 시부모님의 예쁨을 받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쓰고
그렇게 하면 남편이 기뻐하고 나를 더 예뻐해 줄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럼에도 시부모님은 8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나를 못마땅해 하시고
남편의 요구사항은 더욱 커져갔다.
이 상황이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책을 보며 알게 되었다.
이건 어머님과 나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도 입 밖으로 말은 안 하지만 며느리는 기본적으로 시댁에게 '노예'의 지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인간관계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살펴보니 시부모님, 남편, 며느리가 모두 이 관계에 일조하고 있었다.
시부모님은 며느리노예가 얼른 집에 들어와 감정 노동과 신체 노동을 제공하길 원한다.
그래서 본인들의 기분을 좋게 해 주고 몸을 편하게 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며느리노예를 잘 봤다고들 한다.
남편은 암묵적으로 아내가 며느리노예가 되어 본인의 부모님께 감정 노동과 신체 노동을 제공하길 원한다.
그래야 본인도 편하고 부모님도 기뻐하시므로.
아내는 마땅히 내가 며느리노예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촉망받는 며느리노예가 되어 열심히 감정 노동과 신체 노동을 제공하겠다고 다짐한다.
내 몸과 마음은 부서지지만 그래도 시부모님과 남편한테는 사랑받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며느리노예의 이런 소망은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시댁에서 보기에 며느리노예의 노동은 예견된 것이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돈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며느리노예란 응당 그 도리를 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렇게 얘기하지는 않지만 이런 가부장적 사고방식, 수직적 사고방식이 베이스로 깔려 있다.
시어머니도 사실 불쌍한 분이다.
내 선임 며느리노예이자 이 제도의 최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후임 며느리노예가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나의 노동이 줄어들겠지? 후임이 빠릿빠릿하고 눈치 있는 사람으로 잘 들어와야 할 텐데...'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후임 며느리노예가 탐탁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나 때에 비하면 세상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갈군다.
그리고 시아버지와 남편은 방관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여자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서로의 탓만 하지 이게 딱히 시아버지, 남편과는 크게 연관이 있지는 않다고 여긴다.
우리 남편은 아마 방관했다고 하면 굉장히 억울할 지도 모르겠다.
우리 남편은 내가 남에게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듣고 속상해해도 열받아서 속이 부글부글 끓는 사람이다.
항상 나보다 더 화를 내주기에 내가 거기에 위안을 받으며 고마워하곤 한다.
그런데 시댁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내가 아무리 몇 날며칠을 울고 불면서 아프다고 애원해도
결국엔 내가 참아주기를, 내가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시부모님께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이해해주지 않는 나에게 화를 낸다.
내 마음에 생채기가 나고 피가 철철 흘러넘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방관이 맞다. 이건 방관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이제야 8년간의 고부 갈등이 좀 이해가 간다.
내가 속이 상하는 건 이런 문화 속에서 난 순응하고 스스로 노예가 되기를 자청했다는 것이다.
아마 살아오면서 가부장제 문화에 대해 그다지 깊이 생각한 적도 없고 그냥 서서히 물들었던 것 같다.
엄마의 시집살이에 형식적인 공감만 하며 별 문제의식 없이 살아온 결과인 것도 같다.
난 이제 며느리도 노예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로 살겠다. 나를 지키겠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너무 힘들다고 외치며 울부짖는 나를 지켜 내겠다.
내 남편도 내 아이도 내 부모가 있다 해도 나를 지키는 건 내 몫이다.
더 이상 나조차도 내 바람막이가 되어주지 못하는 일은 없게 하겠다.
"내 안의 여리고 소중한 나야~ 그동안 미안했어. 그동안 많이 아팠지?
앞으로는 다른 누군가가 널 함부로 대하도록 방치하는 일 없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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