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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B급 며느리

책리뷰

by real-lee 2023. 3. 23.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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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요즘 책에 빠져 산다.

난 그 모습이 뿌듯하기도 하면서 신기했다.

난 한 번도 책을 재밌어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평생 독서는 나에게 숙제 같은 거였다. 하기는 싫은데 해야만 하는...

그런 나에게 아이가 책을 보며 웃고 틈만 나면 책을 읽으려고 하는 모습은 퍽 신선했다.

아이는 책이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아이와 같이 도서관에 갔다가 어린이 코너에서 쉬운 책들을 읽어 보았다.

재밌고 쉬워서 끝까지 다 읽을 때까지 남편과 아이에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처음으로 책이 재밌어진 순간이다.

그동안 나는 수준에 안 맞는 책들을 읽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중간 단계 없이 바로 성인책으로 넘어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내 수준에 맞는 쉬운 책들이었으면 책의 재미를 더 빨리 알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앞으로는 쉽고 글씨 크고 글밥 적은 책들을 읽으면 되겠다' 하는 확신이 섰다.

 

하루는 도서관에서 쉬워 보이고 눈에 띄는 책을 발견했다.

영화로도 인상 깊게 본 B급 며느리의 선호빈 감독님이 쓰신 책 [B급 며느리]였다.

결혼 이후로 고부갈등은 나의 크나 큰 관심사이기도 하므로 책을 집어 들었다.

도서관에 앉아서 2시간 동안 단숨에 읽었다.

나같이 책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책이다.

조그맣고 가볍고 글밥 적고 쉽다.

 

책을 읽으며 어머니와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주인공 김진영 씨가 겪는 일들이 내가 결혼 후 시댁에서 겪는 일들과 많이 닮아 있었다.

요즘 '왜 사람들은 나를 만만하게 볼까?'

더 글로리 문동은의 말마따나 '다들 어떻게 나를 알아보고 막 대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건 아마 내 얼굴에 '만만한 애'라고 씌어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대화를 몇 번 해보면 싫은 소리 못하고 마냥 웃기만 하고 천진난만한 내가 만만해 보이나 보다.

아래의 문구를 읽고 아 남들이 보기에 나에게서는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겠구나. 그래서 날 존중하지 않는 거구나 싶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으면 화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난 아파도 괜찮은 척 힘들어도 안 힘든 척하기 선수다.

어렸을 적부터 참는 걸 미덕으로 삼고 자라왔다.

그래서 결혼 후 시댁에서도 마찬가지로 행동했다.

무리한 요구에도 좋아하는 척! 선 넘는 지적에도 기분 안 나쁜 척!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은 설움과 분노와 화로 가득 차 있었고

시댁 어른들은 내가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하셨다.

표현 한 번 한 적도 없으면서 알아주기를 바란 건 명백한 내 잘못이다.

내가 맨날 남들한테 조언한답시고 '네가 말 안 하는데 남편이 어떻게 알아?'라고 했던 게 부끄러워진다.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남들을 조금 불편하게 해도 괜찮다.

그래야 그들도 나를 존중해 준다.

주인공 김진영 씨는 "싫어"라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 점이 매우 부럽고 닮고 싶다.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내뱉기 힘든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말을 내뱉기 힘든 이유는

"싫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무섭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싸해지면 어쩌지?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들이 앞선다.

 

주위에 "싫어"를 잘하는 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오히려 그렇게 분위기가 나빠지지 않는다고들 한다.

내가 싫어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고 조심하면서 관계가 더 좋아진다고 말이다.

내 인생은 "싫어"를 못해서 안 좋아진 경험이 수두룩 빽빽이다.

앞으로는 "싫어"를 디폴트로 정해 놓고 지내봐야겠다.

언제든 싫단 말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도 해놓고 말이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로 인해 날 만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나도 그들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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